방송인이자 개그맨인 한민관이 레이싱에 참가하고 있다는 건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드 이벤트에서 팬들에게 손짓하며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주는 모습도 자연스럽고 응원을 전하는 팬들 또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특유의 입담을 선보이는 한민관이 어느덧 모터스포츠 경력 18년차의 베테랑 반열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팬들은 그리 많지 않다.
평소 함께 어울리던 자동차 튜닝 동호회 사람들과 레이싱 경기를 구경하러 왔다가 큰 사고가 나는 장면을 보면서 레이싱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는 한민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런 사고를 보며 겁부터 먹었겠으나 한민관은 오히려 그런 다이나믹한 모습이 레이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본인이 속해 있던 동호회와 함께 2008년 DDGT의 아마츄어 스프린트 경기인 GT200클래스에 발을 담근 것이 레이싱 드라이버 한민관의 첫 데뷔전이었다.
그로부터 어언 18년, 국내 정상급 대회라 평가되는 2025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의 GTA클래스에서 시즌 챔프를 다투고 있는 한민관은 이미 2016년 GT2클래스 시즌 챔피언의 관록을 가지고 있다.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이하 KSF)에서도 제네시스 쿠페-20클래스에 19회 참가하여 포디엄에 4번 올라섰고, 제네시스 쿠페-10클래스에도 12회 참가한 바 있다. 슈퍼레이스에서는 GT-1클래스(GTA클래스의 전신)에서 34회 참가해 2번의 우승을 포함해 9번의 포디엄 입상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종합우승을 차지했던 GT-2클래스에서도 14번 참가하여 7번 포디엄에 올라섰으며 그 중 2번은 1위로 체커기를 받은 실력파 레이싱 드라이버로 손색이 없다.

“취미로 시작해 재미있게 즐기려고 했던 레이싱이 어느 순간 연봉을 받는 프로 드라이버로 바뀌면서 압박감과 부담감으로 다가오게 됐다. 그럼에도 그런 스트레스조차 포디엄에 올라서는 순간 쾌감으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레이싱을 꾸준히 유지하게 됐다.” 연예계에 2006년 데뷔했다는 한민관은 방송인으로서의 경력과 레이싱 드라이버의 경력이 거의 맞먹는다며 본인조차 연예인인지, 레이서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너스레를 남긴다. 취미로 끝날 줄 알았던 레이싱이었으나 2011년,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 본 팀에서 연봉 계약을 제안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레이서로서의 활동이 시작됐고 현재까지의 커리어를 이어오게 된 것이다. 연예인 드라이버로 함께 활동했던 안재모, 김진표, 류시원, 이세창 등이 모두 레이싱을 떠났지만 한민관은 여전히 서킷에 남아 아직도 경기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은 한민관에게 유독 바쁜 시즌이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참가와 동시에 해외에서 진행되는 GT 월드 챌린지 아시아(이하 GT WCA)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어 많을 때는 한 달에 세 번의 시합을 치루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레이싱 시합과 연습에 참가하느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프로그램도 적지 않다. 본업이 연예인이니 그런 방송을 하지 못하면서 수입도 손해가 있긴 했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레이싱이기 때문에 결코 후회는 남지 않는다.” 모터스포츠와 방송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과감하게 모터스포츠를 선택한 한민관은 오히려 경기장에서 직접 만나는 팬들로부터 많은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레이싱을 하게 되면서 다른 선후배만큼 방송에 얼굴을 자주 비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을 기억해주고, 또 응원하러 찾아와 주는 팬들에게 자신이 보답하는 길은 더 좋은 레이싱, 그리고 선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되새기고 있다. “내가 처음 레이싱에 몸 담을 때만 해도 성인 남성들 중심의 문화였다. 아마츄어 경기다 보니 차를 좋아하는 젊은 남자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이제는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많아진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레이싱 문화도 바뀌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자신과 함께 사진을 찍고 가는 어린 팬들을 향해, 응원을 유도하고 또 프로 선수로서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여기는 한민관은 자신의 노력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 한국 모터스포츠의 성장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어느 덧 레이싱 경력 20년을 바라보게 된 한민관은 이제 투지로 레이싱에 참가하기 보다는 팀 상황에 맞춰 차를 타는 마인드를 갖게 됐다. 매 순간마다 달라지는 상황 속에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면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프로 드라이버로서의 자세라고 전해온다. 다수의 우승과 포디엄 입상 경력 덕분에 어디 가서 차를 못 탄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며, 언젠가 은퇴를 하게 된다면 후배를 양성할 수 있는 감독이나 코치로 레이싱에 계속 남고 싶다는 소소한 희망마저 레이싱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온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지친 기색이 없는 한민관은 “GTWCA에서 GT3 차를 탈 때는 약간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GTA클래스에서 시합할 땐 전혀 부담이 없다. 오히려 스케쥴을 맞추는 게 더 힘들 뿐이다.”라며 정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025년 시즌 막바지를 앞두고 내년 계획에 대한 물음에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어 답할 수 없으나, 팀들과 잘 조율이 되길 바란다는 답변을 돌려준 한민관은 개인적인 포부에 대한 질문에 “6000클래스에 대한 욕심은 없다. 제네시스 쿠페만 10년 넘게 탄 것 같은데 이 또한 한계에 온 것 같고, 현재 볼가스 모터스포트 소속으로 해외에서 시합을 하다 보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됐다. 이제는 한국에서 시합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진다.”라며 다소 고착화 되어가는 우리나라 모터스포츠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상위 차량으로 시합하는 클래스의 육성과 전문성의 함양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남겨주었다.
상위 클래스 선수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경력과 커리어를 갖고 있음에도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보기 보다는 경기장을 찾아와 준 팬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경기를 보고 갈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한민관. 그 마음은 늘 팬들과 관중을 생각하는 방송인의 자세가 엿보였지만, 시합에 임하기 위해 헬멧을 챙겨드는 순간 프로 드라이버의 눈빛으로 바뀌는 레이서 한민관은 오늘도 체커기를 향해 질주를 준비한다.

글 이광선 | 사진 정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