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펼쳐진 2025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래디컬 컵 코리아에서 포디엄에 오른 한 선수가 샴페인을 터뜨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하얀 샴페인 포말이 하늘을 날리며 신나는 세레머니를 기대했던 관계자들은 일순 당황하며 재차 샴페인 마개를 따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늦여름 더위 속에 시합을 끝내고 상기된 얼굴로 돌아본 선수의 대답은 모두를 웃음짓게 만들었다. “제가요… 아직 미성년자라서 술은 안되거든요….” 래디컬 컵 코리아 4라운드에서 2위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고등학교 3학년, 신가원의 때묻지 않은 대답이었다.
신가원이 모터스포츠에 첫 발을 디딘 것은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배 KART 레이싱컵 대회였다. 청소년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지냈던 탓에 어머니와 다소 서먹함이 남아있는 채로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조금이라도 딸과 친근해지고 싶었던 어머니가 방법을 모색하던 중 남동생의 권유로 딸을 카트로 이끌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운전을 배우기 위해 카트를 접해본 적 있었던 어머니가 딸에게 취미도 만들어주고,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목적으로 핸들을 쥐게 했던 것이 어느새 3년차를 맞이했고, 그동안 신가원의 이력에는 19번 참가한 대회에서 포디엄 6회, 우승 4회라는 성적표가 남게 되었다.
“처음 카트를 탔을 때의 기억은 두렵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직접 조종하는 무언가에 몸을 실었다는게 무서웠다.” 레이싱에 대한 첫 기억은 설레임이나 흥분보다 다소 소극적인 모습이 이채로웠다. 겁내는 고1 소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은 다름아닌 외삼촌과 전대은 선수였다. 몇 번의 연습과 기초적인 주행 요령을 터득한 신가원은 2023년 5월 데뷔전에서 로탁스 노비스 클래스 4위에 올랐다. 당시 함께 겨룬 7명의 선수들 중에는 현재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GTA클래스에 출전 중인 김시우 선수를 비롯해 권오탁, 권오준 등 지금도 카트에서 순위를 다투고 있는 라이벌들이 포함돼 있었다.

올 시즌, 신가원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전반기였다. 로탁스 맥스 챌린지 1, 2라운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아시아 퍼시픽 모터스포츠 챔피언십’의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었으나, 이어진 KIC 카트대회 1라운드에서 리타이어로 실점하면서 아쉽게 선발권을 놓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크게 실망하는 표정없이 그저 해맑은 미소로 경주차를 닦고 있는 모습에서 이제 어엿한 모터스포츠 선수의 실루엣을 엿보게 된다.
“내 장점이 멘탈이 강하다는 점이다. 실수를 하건, 사고를 당하건 트라우마가 남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일에 후회를 남기기보다 앞으로 내가 해야할 것들을 찾아 도전하며, 파이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다.”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빠른 기록을 내도 그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주었다고 소회하는 신가원은 앞으로 일본 슈퍼 포뮬러에 진출을 목표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내년까지는 카트와 함께 새롭게 출전한 래디컬 컵 코리아를 병행하면서 기량을 쌓을 예정이며, 이후 포뮬러 제팬과 교조 포뮬러에 출전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를 해나가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번 래디컬 컵 출전은 그 첫 단계다. 카트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수동기어 조작과 차량의 움직임, 에어로 다이내믹스 등에 대한 이론과 실전을 통한 경험을 쌓으며 경쟁력을 갖추는 게 목적이다. “래디컬 차량은 카트와 포뮬러, 그 중간단계를 배우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 지난 해 일본 카트대회 시니어 부문에 참가해서 뼈저린 경험을 하고 돌아온 신가원은 보다 전문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어린 나이부터 이론과 실전으로 다져진 일본 선수들에 비해 뒤늦게 레이싱에 참가한 탓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동차의 동역학과 기계공학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 이유다.
대학입시를 위한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이 아닌, 전혀 생소한 분야를 배운다는 것이 힘들 법도 하겠지만 오히려 재미있어 하는 신가원의 표정은 마냥 즐거워 보였다. 다만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시합에 참가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학교를 빠지는 경우가 잦아지는데,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한국자동차경주협회(이하 KARA)가 공인 스포츠협회로 등록되어 있지 않다 보니 학교에서 출결을 인정해주지 못하고 있어 어려움이 크다고 하소연을 남겼다.

이날 신가원은 SR1클래스 예선에서 1:44.051의 랩타임으로 폴 포지션을 차지했다. 약 한 달 전 치러진 4라운드에서 기록한 1:47.129초의 베스트 랩타임을 3초 이상 단축한 것이다. 이어진 결승에서 신가원은 포메이션 스타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최후미에서 스타트하게 됐으나, 쾌속의 질주를 이어가며 줄리안, 데니스에 따라 붙었다. 줄리안이 스핀하면서 자칫 사고로 이어질 뻔 했으나 용케 위기를 피한 신가원은 데니스와 0.923초까지 간격을 좁히며 우승을 목전에 두었다. 그러나 데니스가 코스를 벗어나는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본인도 스핀하며 트랙에 멈춰서는 바람에 순위가 떨어지며 결국 2위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게 됐다.
아쉬운 결과였지만 신가원은 이미 지난 결과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번 경기에서 자신의 잘못을 분석하고, 다음 경기에서 보완할 점에 귀를 기울이는 신가원에게 지금은 그저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선수가 있냐는 질문에 잠시 고심한 신가원이 손꼽은 목표는 F4에 진출한 이규호 선수였다. “롤 모델이라기 보다는 벤치마킹의 대상에 가깝다. 내가 지향하는 바, 그리고 밟아나가야 할 단계를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지켜보고 배울 점이 많다.”라고 대답을 남긴 신가원은 어떤 드라이버로 남고 싶을까? KARA 공인 21번째 시합을 마친 신가원의 목표는 세계 제패라거나 시즌 챔피언과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에게 꿈이자 롤 모델로 남는 선수이고 싶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노력하는 그런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라며 신가원은 다소 소박한 포부와 함께 앳된 미소를 전해주었다.

글 이광선 | 사진 정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