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완주 72회, 2018년 4월 1라운드부터 2026년 9월 6라운드까지 ‘토요타 가주 레이싱 6000클래스(이하 6000클래스)’에서 황진우(준피티드 레이싱)가 새겨온 전무후무한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기록이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9월 13일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L=5.615㎞, 이하 KIC)에서 열린 ‘2026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6라운드는 많은 모터스포츠 팬들과 관계자들이 6000클래스에 출전한 황진우의 리타이어에 커다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2008년 국내 처음 등장한 6000클래스가 144회의 경기를 치르는 동안 125명의 드라이버들이 도전장을 던졌으나 황진우와 같은 기록을 만들어 낸 선수는 없었다.
시속 200여 ㎞를 넘나드는 모터스포츠 승부에서 사고는 피할 수 없다. 차량끼리 부딫히기도 하고 작은 실수 하나와 노면의 컨디션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를 만나면서 한 달간 준비해 온 팀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경쟁이 치열한 대회와 클래스일수록 완주를 한다는 건 우승 못지 않게 어렵다. 지난 2025년 시즌 6000클래스 챔피언에 올랐던 이창욱(금호SLM)도 2025년 4라운드 리타이어로 한 때 위기를 맞은 바 있었다. 모터스포츠에서 최고 인기를 달리고 있는 ‘포뮬러 원(Formula One, 이하 F1)’에서조차 최다 연속 완주 기록은 48회에 불과하다. 가장 많은 시즌 챔피언을 달성한 루이스 해밀턴이 2018년 바레인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2020년 같은 바레인 대회까지 한 번도 리타이어 하지 않고 경기를 완주해 낸 것이 F1의 최다 완주 기록이다. 그 뒤를 이어 오스카 피아스트리가 44회, 막스 베르스타펀이 43회의 연속 완주 기록을 갖고 있다.
황진우의 연속 완주 기록은 루이스 해밀턴의 연속 완주 기록이 시작되던 시기와 비슷하게 시작했다. 용인 에버랜드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된 2018년 1라운드 경기에서 CJ로지스틱스 소속으로 출전한 황진우는 23명의 경쟁자들 속에서 10위로 시합을 마쳤고 그 해 종합순위 12위에 그치며 네임 밸류에 비해 다소 초라한 성적표로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2020년 준피티드 팀과 계약하며 소속을 옮긴 황진우는 엑스타 레이싱 팀과 아트라스BX 팀의 경쟁 구도 속에서도 꾸준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며 완주 기록을 쌓아 나갔다. 같은 해 4라운드에는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 상설서킷(L=3.045㎞)에서 개인통산 6000클래스의 10번째 우승까지 차지하며 준피티드에 첫 승리의 영광을 전해주기까지 했다.

25명의 경쟁자들 가운데 종합순위 7위로 한 해를 마친 황진우는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2021년 1라운드에서 빗 속을 뚫고 정의철, 이찬준이라는 쟁쟁한 드라이버들을 제치며 우승을 거두며 레인마스터라 불리기도 했지만 이후 시합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해를 거듭해 나갈 뿐이었다.
2023년 2라운드 이찬준, 정의철에 이어 3위로 포디엄에 오르며 개인통산 27번째 포디엄 입상 기록을 수립했을 때도 사람들은 황진우의 성적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여전히 강력한 엑스타 레이싱을 비롯해 서한GP와 볼가스 레이싱까지 경쟁 구도에 가세하면서 이목은 상위 팀들의 결과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황진우가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치러진 1라운드에 다시 한번 2위로 포디엄에 등단함과 동시에 50번째 연속 완주 기록을 수립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시선은 다시 황진우에게 집중됐다. 금호타이어가 이탈한 상황에서 넥센타이어에 유일한 대적수로 나선 미쉐린타이어를 장착하고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도 놀라웠지만, 해밀턴의 최다 연승 기록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도 기대감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듯 황진우는 2024년 시즌 내내 가시적인 결과를 안겨줬다. 9라운드 전체 포인트 피니시로 마감하며 총 117포인트 종합 4위라는 괄목할 만한 성적으로 끝을 맺었다. 종 58회 연속완주 기록을 이어간 것은 덤이었다.
뒤 이은 2025년, 금호타이어가 다시 6000클래스의 전장에 복귀하면서 BF굿이어 타이어를 장착한 준피티드의 경쟁력은 다시금 하락세로 접어들었지만 황진우는 5라운드 인제 나이트레이스에서 이창욱과 이정우를 뒤따라 3위로 또 한번 포디엄에 올라서면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노력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줬다.
2026년을 맞이하면서 황진우는 준피티드 레이싱과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6000클래스 참가 10년차를 맞이한 준피티드 레이싱의 꾸준한 데이터 축적과 팀 미케닉들이 쏟아부은 노력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황진우는 올 한해에만 4차례의 포디엄 피니시와 함께 개인통산 13번째 우승까지 차지하며 6000클래스 최다 포디엄(35회) 기록의 보유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19년차를 맞이한 6000클래스에서 최다 참가횟수(120회)를 기록하고 있는 황진우는 단 8경기를 제외하고 112경기를 모두 완주하며 93.3%의 완주율을 보여주고 있다. 급변하는 경기 상황과 예상치 못한 사고 속에서도 8년 넘게 완주를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차량의 상태를 인지하는 감각과 그에 맞춰 경기를 펼치는 운영 능력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에 못지않게 팀원들의 노력 또한 큰 역할을 한다. 황진우는 연속 완주 기록을 수립하기 시작한 2018년부터 총 6년간 준피티드 레이싱 팀과 힘을 합쳤고, 72번의 완주 기록 중 46회의 완주를 준피티드 레이싱의 이름 아래 이뤄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쉽사리 깨질 수 없는 기록에서 60%가 넘는 지분을 갖고 있는 준피티드 레이싱의 미케닉들이 밤새도록 쏟아부은 땀과 열정이 없었다면 이 놀라운 기록은 수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 준피티드 레이싱이 6000클래스에 지속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스폰서들과 박정준 대표 또한 이 기록의 영광을 함께 공유할 자격이 충분하다.

72회의 연속 완주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황진우는 4번의 우승을 포함해 총 14회의 포디엄 피니시, 48번의 포인트 피니시를 거두며 치열한 경쟁의 선두에 서 있었다. 6000클래스에서 완주율 만으로 황진우를 상회하는 드라이버는 다수 있으나, 그런 중에도 꾸준하게 성적을 일궈낸 드라이버는 찾아보기 어렵다. 황진우는 그저 경기에 참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이 어떻든 간에 그 안에서 준피티드 레이싱 팀원들과 최선의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걸 성과로 이끌어내는 드라이버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이런 대기록의 끝을 맞이한 황진우의 모습은 의외로 덤덤했다. 기록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 당연히 아쉽겠으나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후회가 남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 것이다. 이미 놓쳐버린 기록에 연연하기보다 문제가 된 원인을 확인하고, 팀 치프 미케닉인 장태욱 팀장과 함께 다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한 대비책을 먼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굳이 위로를 전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디펜딩 챔피언 이창욱을 상대로 종합우승을 노렸지만 이번 리타이어로 기회를 놓쳐버린 황진우였으나 유래가 없는 기록을 남긴데 대해 팀과 슈퍼레이스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드라이버로 계속 경기에 참가할 수 있게 해 준 준피티드 레이싱 박정준 대표님 덕분에 기록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한 슈퍼레이스가 6000클래스를 계속 개최해 주지 않았다면 이런 기록은 수립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대회를 개최해 온 슈퍼레이스에게도 감사할 따름이다.”라면서 영광을 나누었다.


연속 완주 기록의 바통은 이제 같은 팀의 박정준에게 넘어갔다. 현 시점에서 황진우 다음으로 6000클래스 최다 완주 기록을 만들어 가고 있는 드라이버가 2023년 4라운드 이후 총 29회의 시합을 완주하고 있는 박정준이기 때문이다. 서한GP 김중군 또한 기회가 있다. 2024년 4라운드부터 지난 6라운드까지 총 21경기를 완주하고 있는 김중군 역시 꾸준하게 성적을 내면서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에 유력한 기대주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황진우의 기록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6000클래스에서 50여 경기 이상이 필요하다. 차순위 선수들이 이제 20여회의 연속 완주 기록을 쌓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록 갱신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울 뿐더러, 대회를 주관·주최하는 슈퍼레이스의 의지 또한 중요하다. 77년째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F1이나 올 해로 73회를 맞이하는 마카오 그랑프리처럼 지속성을 갖지 못한다면 이러한 대기록은 수립되지 못한다.
지난 2018년을 끝으로 막을 내린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이하 KSF)’이나 2019년 폐막한 ‘슈퍼챌린지’는 더이상 기록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제 8년차를 맞이한 ‘현대N페스티벌’과 4년차에 접어든 ‘인제 GT 마스터즈’에서 슈퍼레이스에 걸맞는 기록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만큼 슈퍼레이스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모터스포츠 대회로서 입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기록은 모터스포츠에 참가하는 선수와 팀이 자신들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잣대이며, 이렇게 입증된 기록을 통해 수많은 팬들이 열광하는 스타 플레이어가 탄생하게 된다. 20여년간 꾸준히 대회를 주최해 온 슈퍼레이스는 이런 스타 플레이어가 등장할 수 있도록 여건과 대한민국 모터스포츠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그 영광을 함께 공유한다. 매 라운드마다 관람석을 채우고 있는 1만여명의 관람객과 대회가 개최되는 곳이면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팬들은 그간 쏟아부은 투자의 성과이며 슈퍼레이스가 갖고 있는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다고 말한다. 만들어지고 있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한번 수립된 기록은 도전자들에게 새로운 목표이자 지향점으로 남는다. 깨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조항우, 김종겸의 기록에 이창욱이 도전하고 있는 것처럼 황진우가 남겨 놓은 기록 또한 언젠가는 넘어설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이 다가오는 날 까지 슈퍼레이스와 6000클래스가 지속적으로 개최를 이어가고, 수많은 팀들과 드라이버들이 기록 갱신을 앞두게 되는 순간이 오기를 고대한다.


글 이광선 | 사진 정인성